2022년 1월 28일, 일을 마치고 업타운 쇼핑센터에 갔다. 태블릿을 넣을 가방과 신발, 바지를 사고 싶었다.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바로 고르지는 못했다. 다운타운에 가서 아크테릭스를 구경하고, 베이센터에도 들렀는데 위너스에 가려던 순간에는 연기가 자욱해 들어가지 못했다. OPA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소득은 없었다. 그래도 아직 다운타운이 어색해서 거리를 걷는 일이 여행처럼 느껴졌다. 집에 와서는 오프라인에서 가방을 고르기 어렵겠다고 생각해 인터넷 쇼핑을 세 시간 넘게 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찾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쇼핑은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 시간이 됐다.
그날 가방 리뷰가 들린 데에는 그 전의 시간이 있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부터 쉬는 날마다 언어교환 파트너와 통화하며 영어를 입으로 꺼내는 시간을 만들었다. 반대로 서브웨이에서는 영어를 쓰는 것 같아도 주문에 필요한 말만 반복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방 리뷰를 따라간 일은 일터에서 자동으로 채워지지 않던 듣기를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고 싶었던 가방 대신 영어 리뷰를 봤다
가방 리뷰를 영어로 검색했다. 한국어 리뷰를 찾을 때처럼 제품을 비교하려고 영상을 눌렀는데, 어느 순간 영상의 말이 거의 그대로 들어왔다. 예전 같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 5초 전으로 돌려 다시 들었을 텐데, 그날은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진짜로 영어가 늘긴 늘고 있구나 싶었다. 가방을 살지 말지 보려고 눌렀는데, 영상을 되돌리지 않고 보고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말하는 유튜버 중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이나 한국계 미국인의 영상을 자주 골랐다. 영어로 말하지만 주제가 낯설지 않았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생활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수업처럼 앉아 있는 것보다 덜 부담스러웠다. 보고 싶은 것을 고르면 듣는 시간이 따라왔다.
영어 유튜브만 본 것도 아니다. 대화가 어렵지 않은 성장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Atypical)를 네 번 정도 보면서 익숙한 장면의 문장을 다시 듣기도 했다. 몇 편을 봤는지가 핵심은 아니었다. 내가 이미 알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 영어가 소음처럼 지나가지 않고, 뜻을 붙잡을 틈을 준다는 점이었다.
단어 하나보다 장면이 오래 남았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새 표현을 한국어 뜻 하나로만 외우지 않으려고 했다. 같은 뜻처럼 보이는 말도 실제로 사용되는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웨이에서 손님에게 매장 근무자라면 10퍼센트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손님이 놀라며 insane이라고 반응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사전에서 본 뜻보다, 어떤 상황에서 그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지를 더 선명하게 배웠다.
그래서 표현을 배우면 그 말을 들었던 상황도 함께 기억하려고 했다. insane을 외울 때 할인받는다는 말에 놀란 손님을 떠올리는 식이었다. 뜻은 알아도 언제 써야 할지 모르겠는 단어에 조금씩 자리가 생겼다.
다시 한다면 그날 가방을 고르느라 본 영상에서 문장 세 개만 바로 적어두었을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좋아하는 물건의 리뷰는 표현을 억지로 찾지 않아도 되고, 같은 주제를 여러 영상에서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좋은 연습 재료다.
예를 들어 가방의 수납공간을 설명할 때 나온 말을 골랐다면, 내 가방을 보면서도 그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을 알아들은 기분에서 한 번 더 나아가 직접 말해보는 연습이다. 그날의 나는 알아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뿌듯했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해보고 싶다.
취미를 연습장으로 쓰기
영어 공부도 꼭 교재 앞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 가방을 사려는 사람은 제품 리뷰를 보고,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카메라 사용기를 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은 조리 영상을 볼 수 있다. 주제를 고르는 기준은 공부에 좋은 영상인지보다 내가 끝까지 보고 싶은지에 두는 편이 낫다.
다만 알아들은 것 같다는 느낌만 남기면 다음에 다시 꺼내기 어렵다. 짧은 영상을 고르고, 한 번은 흐름을 따라가고, 두 번째에는 반복되는 표현을 하나만 골라 입으로 말해보는 식이면 충분하다. 억지로 많은 표현을 모으면 쇼핑의 재미도 공부의 집중도 같이 사라진다.
내가 다시 시작할 때 남겨둘 메모는 다음 네 가지다.
그날 집에서 가방을 비교하며 알게 된 건, 관심 있는 내용을 영어로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터에서는 뚜껑 하나를 부탁하지 못했지만, 집에서는 가방 설명이 멈추지 않고 들어왔다. 두 장면이 나란히 있어 내가 무엇을 알아듣고 어디에서 막히는지 보였다.
며칠 뒤에는 가방이 아니라 내 머리 모양을 영어로 설명해야 했다. 빅토리아의 바버숍 의자에 앉아, side part와 skin fade를 말하고 나서 결과가 보이지 않는 채 기다리게 된다.